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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공연

국립 중앙 박물관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장소: 국립 중앙 박물관 특별전시실 1
전시기간:  2024.11.30~2025.03.03
예매: 네이버 (현장 잔여수량은 미리 조회 필수!)
        10:00~17:00 까지 30분 단위로 입장시간을 선택 가능
주차: 국립중앙박물관 내에 가능 (유료)

🔹 전시관이 혼잡합니다. 
    이 점 미리 고려하시고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오랜만에 지인들과 함께 전시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미술에 재능도 어쩌면 그 역사도 잘은 모르지만,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좋은 전시가 있을 때면
언제나 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코로나가 꺽이고 전시가 시작되면서 좋은 전시들이 많이 열리는 요즘,
보고 싶은 전시들은 많았는데 놓치기 일 수 였어요.
그러다 지인들이 전시회를 간다는 말에 후다닥 시간을 맞춰 예매를 했습니다.
마침 볼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거든요.
 
몇년 전인가 클림트 전시회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무척이나 기대를 많이 했어요.
드디어 키스를 볼 수 있을까? 라는 두근대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그 키스는 볼 수 없었어요.
 
이번에도 당연히 오지 않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클림트의 그림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유의 분위기가 저는 참 좋았거든요.
 
그리고 문제의 에곤 실레.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가볍게 읽은 미술책에서 에곤 실레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마침 관심을 가지게 되었거든요.
 
어린나이에 요절한 천재 화가.
외설에 가까운 그림들로 비난 받았던 그 화가의 그림들도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이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을 가는 날 무척이나 설렜습니다.
 


 
이번 전시의 테마는 1900년대의 빈 분리파의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보수주의에 분만을 가진 화가들이 주축을 이루었다는 빈 분리파는 단순히 그림만 그린 것이 아니라 건축이나 공예등의 종합 예술을  지향했다고 합니다.
 
이 빈 분리파에 속해 있던 대표적인 화가가 바로 구스타프 클림트이고, 이 구스타프 클림트가 사랑한 제자 에곤실레가 함께 활동을 했습니다.
 
 

예술은 삶의 총체적인 경험입니다.
모든 예술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는 건축, 조각, 회화를 
하나의 작품으로 통합할 것입니다.

비엔나 분리파

 
 
모든은 아니지만, 하나의 생각으로 뭉쳤던 이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지고 흩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도 그러한 길을 걸었지만, 그들이 하나였던 시간동안 했던 활동은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전시는 클림트와 함께  시작됩니다.
사실 제목을 다 알 수 없지만, 클림트 특유의 화풍은 사람의 눈을 끄는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몽환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그림은 시선을 한참 붙들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특히 모자를 쓴 여인의 그림은 붉은 배경과 여인의 검은 색 의상으로 인해서인지 몽환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여인의 모습이 느껴졌습니다.
 
마음을 두드리는 그림들 앞에서는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감상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드렸든 저는 미술적 지식이 없고 사실 그렇다고 공부를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인상주의니 야수파니 뭐 이런 것들을 설명할 능력은 없습니다.
 
그저 마음으로 보고 느낄 뿐이죠.
하지만, 모든 것은 아는 만큼 보이기에 때때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만,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닌듯 합니다. 
 
삽화나 다양한 그림들을 쭉 보고 지나가다보면, 이 전시는 화가들이 차를 마시던 카페를 재현해 놓거나 스크린을 통해서 시각적으로 
그들의 그림을 볼 수 있는 공간들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앉을 수 있는 공간도 다수 있어, 관람이 힘들때는 편하게 쉴 수 도 있었습니다.
 
그런 공간들을 지나가면 거의 마지막 에곤 실레를 만나게 됩니다.
 
클림프의 작품이 생각보다 적다면, 에곤 실레의 작품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드로잉부터 자화상 그리고, 누드화까지.
 
게다가 인간실격이라는 책 표지에서 볼 수 있는 에곤 실레의 그림을 실제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비뚤어진 몸을 그대로 표현한 그림은 강렬한 색과 함께 무심한 듯한 표정이 무척이나 독특하다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있던 손모양의 조형물을 보면서,
혹시 에곤 실레에게 있어 손은 어떠한 의미가 있었던 걸까? 하는 고민도 살짝 해보았습니다.
 
29살에 요절한 천재화가의 삶은 평온치 않았지만, 그 후반 만났던 부인으로 인해 조금은 안정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그 화가는 또 어떻게 변해갔을 지 살짝 궁금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것들이 굳어지고 관습처럼 변하는 것이 힘들어 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런 순간 항상 그 곳에는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씨앗이 심어지고 꽃이 핍니다.
 
아마도 미술의 변화 또한 그러한 굴곡들 속에서 소멸과 탄생, 그리고 다시 재탄생하는 과정을 겪어가며
지금에 이르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양성의 열매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닐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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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는 자유를


그래서 이 단순한 슬로건이 주는 여운이 크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